문영식 한림성심대학교 총장
지난 몇십 년간 대학 생활의 풍경은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다. 가방 속의 두꺼운 전공 책들은 컴퓨터 파일과 태블릿 PC로 대체됐으며, 분필 가루 때문에 기관지 건강을 걱정하던 시절은 지나고 전자파 노출에 대한 걱정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와 더불어 기술 혁신이 가속화되고 삶의 많은 부분이 비대면으로 대체되면서 교육환경은 그야말로 상전벽해의 시기를 맞이했다.
AI 기반의 기술은 최근 10여 년 동안 혁신적인 발전을 거듭해 이미 몇몇 분야에서는 컴퓨터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수준에 이르렀다. 교육 분야에서도 이러한 최신 기술을 활용한 에듀테크(EduTech) 제품과 서비스들이 개발돼 사용되고 있다. 챗GPT를 사용해 강의 자료를 만들 수도 있고, AI 튜터를 활용해 학습자의 진도와 능력에 따른 수준별, 맞춤형 교육을 제공할 수도 있다. 이제 학생들은 같은 내용을 일방적으로 듣고 학습하는 전통적인 학습 방법에서 벗어나 각자의 수준과 특성에 맞는 더욱 효과적인 학습 방법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팬데믹의 영향으로 인해 언택트 사회로의 이동이 급속하게 진행됐으며, 이러한 변화에 따라 교육 현장에서는 온라인 교육이 활성화됐다. 이제는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본인에게 적합한 강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온라인 강의의 장점이 부각되면서 에덱스(edX), 코세라(Coursera) 등의 온라인 공개강좌(MOOC)를 수강하는 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온라인 교육은 오프라인 교육의 대체재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중심이 되는 하나의 독자적인 교육수단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교육환경의 변화에 더해, 우리나라 대학들은 국내 환경의 변화에 따른 또다른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첫째, 출생률 저하로 학령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함에 따라, 다수의 대학에서 신입생 유치가 어려워지고 있으며 일부 대학에서는 입학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하는 미달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둘째, 인구의 수도권 집중과 학생들의 수도권 대학 선호 현상으로 인해, 비수도권 지방 소재의 대학들은 인구감소로 인한 위기 상황을 더더욱 심각하게 체감하고 있다. 셋째, 2009학년도부터 16년간 지속된 대학 등록금 동결 때문에 대부분의 대학은 충분한 재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고, 물가 인상의 현실 속에서 일부 대학은 폐교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대학의 재정 악화는 결국 교육 서비스의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넷째, 본인의 적성을 고려해 대학을 선택하기보다는 수능 점수에 맞춰 일반대학의 인기 학과로 진학하는 문화가 일반화됨에 따라, 취업 위주의 교육을 담당하는 전문대학은 일반대학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 속에서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다른 그 무엇보다도, 대학 스스로의 혁신과 자구노력이 필요하다. 대학은 전통적인 일방향적 교육 방식을 고집하지 말고 ‘플립러닝(flipped learning)’ ‘문제기반학습(PBL, Problem Based Learning)’ 등 새로운 교육 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또한 필요에 따라 온라인 교육이나 AI 튜터, 학습자 수준 맞춤형 교육 등의 에듀테크 기법들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모든 대학이 백화점식으로 모든 인기 분야의 학과를 운영하기보다 각 대학의 전문 분야 또는 지역 특화 분야에 따라 ‘선택과 집중’하는 특성화가 필요하다.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의 역할 분담 역시 중요하다. 이론과 기초학문 중심, 연구 중심의 일반대학과 전문직업인을 양성하는 취업 중심의 전문대학은 각자의 역할에 맞는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 지방 소재의 대학, 특히 전문대학은 지역 사회의 수요를 반영하고 특성을 고려한 학과 개편과 구조 조정을 과감하게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혁신을 통해 지역 정주 인력을 양성하고 지역 사회와 상생하며, 수도권 대학과 차별화된 정책으로 학생들이 찾아오는 대학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학생이 만족할 수 있는 최상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많은 대학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필자가 소속해 있는 춘천시 소재의 한림성심대학교는 전문직업인을 양성하는 85년 역사의 전문대학으로서, 정부 재정지원사업(전문대학혁신지원사업, LINC 3.0사업, HiVE사업 등)을 통해 연간 약 110억 원의 국고를 지원받고 있다. 이 재원을 활용해 대부분의 강의실을 에듀테크 활용 교육이 가능한 첨단 강의실로 리모델링 했고, 온라인 교육을 위한 전문적 방송영상 장비, 레코딩 시스템, 특수 방송조명, 전동 크로마키 시스템 등 방송국의 스튜디오를 방불케 하는 블랙 스튜디오를 완공했다. 이러한 교육 인프라 개선과 함께 지역 사회 수요를 고려한 학과 구조 조정, 실습 위주의 교과 과정 개편 등의 혁신을 지속한 결과 2022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에서는 76%의 취업률을 기록해 전국 대학 취업률의 상위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학생 만족과 우수 취업을 목표로 부단한 혁신과 노력을 했기에 거둔 성공적인 결과이다.
그러나 대학이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보다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 대학의 자구노력을 뛰어넘는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가장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부 정책 차원에서의 해결이다. 출생률 감소와 수도권 과밀집 현상을 극복하고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 정부는 각종 세제 혜택, 규제 완화, 재정 지원 등의 지방 배려 정책을 과감하게 시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고 사업 예산 집행에서 대학의 자율권을 확대함으로써 대학이 보다 실질적인 재정 지원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대학 위기의 극복을 위해 국민 모두의 사회문화적인 인식 개선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실업계 고교보다 인문계 고교를, 전문대학보다 일반대학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선택할 때 자신의 적성에 맞는 선택은 무엇인지, 어떤 선택이 나에게 미래의 행복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교육은 국가 백년지대계”라고 한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미래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미래의 행복을 줄 수 있는 교육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대학, 정부, 국민, 모두가 힘을 합해 해결책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한국대학신문>
출처 : 한국대학신문 - 411개 대학을 연결하는 '힘'(https://news.unn.net)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64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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