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 한림대한강성심병원장
국내유일 화상전문 대학병원
화상외과 전문의 8명 등 포진
24시간 응급대기 상황에서도
수십억 적자 버텨내는 힘은
일터 즐거워야한다는 철학

한림대한강성심병원은 한국에 단 한 곳뿐인 화상 전문 대학병원이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성과를 자랑하지만, 현실은 매년 수십억 원대 적자에 허덕이는 처지다.
필수의료 시스템이 붕괴되는 상황에서 24시간 365일 응급 상황을 지켜내는 일은 최후의 보루이자 고독한 사투다. 그럼에도 이 병원은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실시한 '환자 경험 평가'에서 역대 최고점으로 전국 1위를 기록하며 의료계를 놀라게 했다.
긴축과 통제를 택해야 할 냉정한 경영 지표 앞에서 허준 한림대한강성심병원장은 정반대 길을 택했다. 그는 위기의 본질을 조직 내부에 축적된 '예측 불가능한 불안'으로 진단하고 병원 재정의 민낯을 구성원에게 그대로 공개하는 정공법을 꺼내들었다.
허 원장은 "경영 상황이 좋아지든 나빠지든 투명하게 알릴 테니 불안해하지 말고 그저 웃자고 제안했다"며 "마른오징어를 쥐어짜듯 부서에 책임을 돌리기보다 내가 밖에서 오징어를 잡아 올 테니 여러분은 잘 말려달라고 당부한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일터가 즐거워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병원 분위기를 확 바꿔놨다. 로비에서 의료진과 내원객이 환한 미소로 인사를 나누는 풍경은 이제 일상이 됐다. 심적 여유를 갖게 된 의료진은 환자의 미세한 통증과 표정 변화까지 세밀하게 살폈고 그들이 건네는 말 한마디에 환자들은 진심 어린 위로를 받았다. 허 원장은 "구성원의 행복이 환자의 긍정적인 치유 경험으로 이어진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화는 실제 경영 성과로도 이어졌다. 허 원장이 취임한 2022년 당시 연간 적자는 100억원을 훌쩍 넘었다. 그는 비효율적 공간을 줄이고 부서를 통폐합하는 한편, 확보된 여력을 진료 활성도가 높은 분야에 집중 투입하는 '6년 마스터플랜'을 가동했다. 그 결과 취임 첫해 적자를 79억원까지 끌어내리며 병원을 지속가능한 구조로 탈바꿈시켰다.
이 병원의 또 다른 강점은 '토털 번 케어' 시스템이다. 화상외과, 성형외과, 재활의학과의 협진을 통해 급성기 생존부터 기능 재건, 일상 복귀에 이르는 전 과정을 밀착 지원한다. 여기에 고압산소치료와 로봇 재활 등으로 흉터를 최소화함으로써 사고를 겪은 이들이 다시 사회 일원으로 온전히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빈틈없는 협진 체계가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의료진의 사명감 덕분이다. 허 원장은 "화상외과 의사들은 스스로를 '미친 자들의 집합'이라 부른다"며 "야간에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5명 전원이 현장으로 뛰어올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외과 의사가 기관지 내시경부터 심장 초음파까지 직접 해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 이곳에선 '내 분야가 아니라 못한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웃었다. 국내 화상 전문
의료기관 중 유일하게 독립된 코디네이터실을 운영하는 것도 강점이다. 이곳 코디네이터들은 퇴원하는 환자에게 향후 1년간 이어질 치료 일정과 관리 수칙을 체계적으로 안내한다.
한림대한강성심병원의 다음 목표는 병원 문턱을 낮춰 지역사회의 실질적인 안전망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화상이라는 고도의 전문성을 유지하면서도 소아 고열이나 단순 외상 환자가 치료받을 곳을 찾지 못해 거리를 전전하는 이른바 '뺑뺑이' 사태를 막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청사진이 현실화하려면 정책적 지원은 필수다. 그는 "산부인과나 화상센터처럼 환자가 없는 날에도 24시간 인력과 시설을 유지해야 하는 분야는 존재 자체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며 "행위 건수와 무관하게 필수의료 인프라스트럭처 유지에 드는 고정비용을 국가가 보전하는 방식을 검토해 달라"고 말했다.
이 병원은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화상 전문 의료기관 중 유일한 대학병원이다. 이 밖에 베스티안(서울·부산·충북), 푸른병원 등이 화상 전문병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심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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